[핸드메이커 전은지 기자] 9월은 독서의 달이다. 가을이라는 계절과 맞물려 책 읽기 가장 좋은 달이기 때문이 아닐까. 또 요즘은 집콕을 하는 시간이 많다보니 독서를 하는 사람들도 많아졌고, 과학, 재테크, 아동 분야 도서판매량도 늘었다고 한다.
책도 시대에 따라 변화하면서 전자책, 오디오북 등이 등장했지만, 종이책의 감성은 따라올 수 없다. 책장을 넘기며 읽는 재미도 있지만, 독특한 디자인이 더해졌거나 책 속에 가끔 등장하는 삽화는 책을 열어보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책과 미술이 만나 독서의 또 다른 즐거움을 더해주는 ‘북아트(Book art)’가 바로 그것이다.
‘미술가의 책’이라고도 부르는 북아트
북아트는 문학과 미술이 결합한 형태의 예술이다. 보통 책의 내용을 그림으로 그린 ‘삽화’가 대표적이다. 그래서 프랑스어로 ‘미술가의 책(livre d’artiste)’이라고도 한다. 시대 변화에 따라 그 범위가 점차 넓어졌다. 북아트가 처음 시작된 사례는 중세시대 성서 필사본 삽화다. 그 후 판화기술이 발달하면서 19세기 중반부터 활발해졌다. 대표적인 삽화가로 꼽히는 이들은 영국의 윌리엄 블레이크, 외젠 들라크루아다.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는 자신만의 색이 강했던 화가로 엉뚱한 상상력이 풍부했으며, 선명한 색채를 사용했다. 그의 대표적인 삽화는 존 밀턴의 ‘실락원’과 자신이 직접 지은 시집 ‘순수의 노래’다.
7월 혁명을 그린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는 프랑스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화가다. 문학을 특히 좋아했던 그는 ‘햄릿’, ‘파우스트’ 등에도 그의 작품이 삽화로 실렸으며, 단테의 ‘신곡’의 내용을 소재로 ‘단테의 배’라는 작품을 그리기도 했다.
이 외에도 유명 화가로 이름을 알린 프랑스 인상파 화가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는 시인 에드거 앨런 포의 시집 ‘도래까마귀(갈가마귀)’의 삽화를 그리기도 했다.
20세기 초에도 화가들이 삽화를 그리거나 시의 내용을 그림으로 그리는 경우가 많았다. 상징주의, 초현실주의와 결합된 북아트였다. 프랑스 야수파 화가인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는 프랑스 시인 스테판 말라르메 시집의 삽화를 판화의 한 종류인 에칭화로 그렸다. 스테판 말라르메도 친분이 깊었던 인상주의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Auguste Renoir)는 1891년 그의 시집 ‘책(Pages)’의 삽화를 그리기도 했으며, 말라르메의 초상화를 그려주기도 했다.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조각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은 단테의 ‘신곡(神曲)’ 지옥편에서 영감을 얻어 ‘지옥의 문’(1880∼1900)을 제작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186인의 인물을 모두 조각해 6.5m의 문을 만들었다.
입체파 화가인 파블로 피카소는 약 150여권의 삽화를 그렸을 정도로 많은 삽화를 그렸다. 1930년에는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의 ‘변신보(變身譜)’, 발자크의 ‘알려지지 않는 걸작’에 동판화(銅版畵) 기법으로 삽화를 그렸으며, 1934년에는 그리스 시인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리시스트라테’ 특별본에 그가 그린 삽화가 들어갔다.
현대부터 북아트의 개념이 더 넓어져, 책의 삽화에서 책의 형식 자체를 미술가들이 변형시키는 시도가 일어났다. 작품의 소재로 책을 사용한 것이다. 이를 통해 출판물도 다양해졌으며, 단순한 책이 아닌 예술작품으로 성장하게 됐다. 현대에서 북아트를 본격적으로 발전한 때는 1960년대 미국이다.
‘출판물에 활용된 북아트의 사례 연구 -한정 본 출판물을 중심으로-(김경희, 김나래, 2009 / 한국디자인포럼, 22, 153-162)’에 따르면, 당시 미국에서는 많은 작품을 빠르고 경제적인 방법으로, 논지를 전파하거나 팜플렛처럼 값싸게 대량으로 판매하는 것을 목적으로 북아트를 했다고 한다. 당시 ‘플럭서스 아트’가 퍼지면서 생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플럭서스는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일어난 국제적 전위예술 운동으로, 삶과 예술의 조화를 중심으로 했으며, 작가들이 우편을 통해 작품을 교류했다고 한다. 점차 발전하면서 가장 처음 열린 최초의 북아트 전시는 1972년 런던의 니젤 그린우드 갤러리에서 개최된 ‘북아트 그룹전’이라고 한다.
현대 북아트 작품으로 유명한 작가는 에드 루샤(Edward Ruscha)가 있다. 팝아티스트이자 레이아웃 미술가인 에드 루샤는 순수미술의 전통적 방식을 뛰어넘어 대중문화의 대량생산 방식을 자신의 표현수단으로 삼았다. 대표적 작품은 ‘26개 주유소’(1963년)다. 이 작품은 26개의 주유소를 흑백 사진으로 찍어 인쇄했으며, 48페이지의 책 형태로 만들어졌다.
책 내용과 구조의 조화가 중요해
북아트에서 중요한 것은 내용, 재료, 구조다. 책은 예술작품이기 전에 작가가 쓴 내용을 잘 전달해야 하는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그 구조에 따라 다양하게 나눠볼 수 있다.
북아트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삽화’는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그림이다. 문장 사이사이나 책 한 면을 차지하는 형식으로 들어간다. 삽화는 고대 이집트 파피루스 두루마리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글 대신 그림으로 내용을 전달하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코덱스(Codex)’는 우리가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책의 구조다. 양피지 두루마리에서 발전한 형태로 여러 장의 종이를 끈으로 묶은 뒤 표지를 입힌 것을 말한다. 기원전 2세기 유럽의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현대까지 이어졌다. 종이를 한 묶음씩 실을 이용해 꿰는 전통 손 제본부터 양장제본, 무선제본 등 기계 제본 방식이 있다.
‘폴드(Fold)’ 또는 ‘아코디언(Accordion)’, ‘병풍식’ 스타일이라고 부르는 방식은 이름처럼 접는 모양으로 되어 있다. 내지가 적게 들어간다고 한다. 접이식이기 때문에 내용의 연결성이나 연속적 이미지를 나타낼 때 한 번에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행사 안내 팜플렛 등에서도 많이 이용된다.
‘팝업북’은 펼치면 그림이 입체적으로 튀어나오는 방식이다. 카드나 어린이 동화책 등에서 볼 수 있다. ‘두루마리북’은 이름 그대로 종이가 말려있는 형태로 옛날 양피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형태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 상소문이나 동양화에서 많이 사용된 형태다. 긴 종이를 말아놓은 형태라 한쪽 면만 사용할 수 있다.
‘팬(Fan)’은 부채처럼 펼쳐지는 형태다. 한 쪽이 고정되어 묶여있어 내용의 연속성을 한 장에서 보여줄 때 사용하면 효율적이다. 어린이들이 단어를 익히는 카드 형태의 책에 사용되거나 사진처럼 컬러 팔레트에 사용하면 색의 변화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어 좋다. ‘블라인드(Blind)’는 창문에 사용하는 블라인드와 모양이 같다. 팬 방식과 비슷한 개념으로 제일 첫 번째 블라인드가 책표지가 된다. 이 외에도 책 페이지가 한쪽 방향으로만 누워서 책을 열면 깃발처럼 펼쳐지는 형태의 ‘플래그(Flag)북’, 문이 열리는 방향으로 그림이 열리는 플랜북 등이 있다.
또는, 책 내부 이미지에 여러 재료를 더해 입체감을 더해주기도 한다. 주로 어린 아이들이 책을 보며 직접 만지며 창의력과 감각을 키울 수 있도록 하는 형태다.
독서치료나 창의력 개발에 활용하기도
북아트는 예술가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책과 미술의 결합이기 때문에 교육적 효과가 뛰어나 학교 현장이나 도서관에서도 독서 프로그램으로 북아트 관련 프로그램을 개설해 운영한다. 그 형태는 아이들이 독서 후에 느낀 내용이나 떠오른 생각을 직접 그림이나 만들기로 표현해 나만의 책을 만들도록 하거나, 입체적인 미술 작품을 만들도록 하는 형태다.
경북 연일초등학교는 2017년부터 매년 여름방학 동안 학생들의 관심과 흥미를 이끌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국사 프로젝트 및 마음의 심성을 다듬어가는 동화테라피 수업을 운영하고 있다.
‘역사탐험대 및 맛있는 동화테라피 수업’은 5~6학년 학생 14명을 대상으로 시대적 흐름에 맞춘 이론과 북아트 수업을 병행하여 흐름을 이해하고 북아트로 완성하도록 진행됐다. 창의적인 작품을 완성과 함께 동시, 동화의 구성으로 창작의 즐거움도 더했다.
수업은 강사의 주제 미션에 자신만의 이야기를 동시나 동화의 형태로 자유롭게 구성해 스토리를 완성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학생들은 수업 시간 동안 자신만의 내면의 생각과 느낌을 한 권의 책으로 완성했다.
또는 독후활동의 개념으로 진행되는 수업이 많다. 경북 서벽초등학교는 지난해 전교생을 대상으로 북아트 활동을 진행했다. 학생들은 직접 독서노트를 만들고, 보석십자수로 스티커를 만들어 붙여서 꾸민 후 완성했다. 이 활동은 독후활동의 재미를 더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학생들에게는 자신이 읽은 책을 기록하고, 의미를 되돌아보는 등 독서의 중요성을 깨닫게 했다.
독후활동 외에도 북아트는 학생들이 직접 책을 만들어보며 창의력을 키우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전남 노동초등학교는 지난해 ‘북아트로 나만의 책 만들기 체험의 날’을 통해 학생들에게 책 만들기의 재미를 더했다. 이 프로그램은 교사, 학생, 학부모가 모두 참여한 행사로, 학년별로 수준에 맞게 책을 만드는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1~3학년은 동시북 만들기를 통해 책 만드는 순서와 방법을 배우고 동시를 암송하며 동시 속에 숨어있는 의미를 상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어 나만의 동시집을 만들고 직접 쓴 시를 적었다. 4~6학년은 스크랩북 만들기로 기록의 소중함을 배웠다. 이 활동에 참여한 학생은 “나만의 책을 직접 만드니 신기하고 뿌듯했고, 앞으로 책을 읽고 열심히 내 책에 적어보겠다”고 말했다.
이런 활동들은 ‘북아트 지도사’가 중심이 되어 운영된다. 북아트 지도사는 다양한 북아트의 구조와 기법을 익혀 유아부터 초등학생까지의 어린이들의 북아트 활용교육을 진행한다. 주로 초‧중등학교의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이나 어린이집, 유치원, 아동복지시설 등에서 활동하게 되며, 홈스쿨링도 가능하다. 주로 아이들과 여러 재료를 가지고 만들기를 하기 때문에 경력단절 여성들이 자격증을 취득해 강사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자격증 취득 강의에서는 코덱스북, 동양식 제본, 팝업기법, 팬북, 스크랩북, 플래그북, 폴드구조 등 북아트에서 알아야 할 형식을 배운다. 취업지원센터나 온라인 강의를 통해 취득할 수 있다.
‘북아트’는 책이 단순히 지식 전달의 도구가 아닌 예술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또한, 책을 읽고 난 후의 생각을 여러 재료로 창작하는 활동 또한 북아트라는 점에서 그 범위와 발전가능성이 넓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사용으로 책읽기를 어려워하거나 독서 자체를 따분하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간혹 있다고 한다. 그런 이들에게 북아트를 추천한다. 직접 책을 만들거나 책을 읽고난 후의 느낌을 색다르게 표현한다면 독서가 즐거운 것임을 깨닫게 될 것 같다. 북아트는 생각을 크게 키울 수 있는 영양분 같은 예술이다.
September 04, 2020 at 09:1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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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트, 읽는 재미에 펼쳐 보는 즐거움 더하는 예술 - 핸드메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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